출발전
세살배기 둘째녀석의 새벽 잠투정에 선잠을 자면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까 싶어, 아내와 상의하여 잠을 따로 잤다. 그러나, 대회전날의 설레임 때문인지, 옆에 항상 있던 사람이 없기 때문인지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결국 새벽 세시에 일어난다.
전날 저녁 사다놓은 인절미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경기복을 입고 거울앞에 서 보니 체중조절에 실패한 내 모습이 눈에 보인다.
"아~ 동호형님이 1Kg 당 풀코스기록 3분 단축이라고 하셨는데.. 젠장.."
그 와중에 생리신호가 감지되고 경량화 작업을 실시하지만 생각보다 몸이 가벼워지지 않는다.
아내의 격려와 함께 집을 나서, 클럽 식구들을 만나 다같이 광화문에 도착해 대회를 준비한다. 서로 격려하며 낄낄거리는 이 시간이 나는 참 좋다. 병철 형님께는 근육경련을 막아주는 약을, 진철형님께는 진통제를 하사받고, 파워젤 5개가 장착된 레이스벨트를 매는 순간! 나는 약물중독 러너로 거듭난다.
인터넷 어딘가에서 본대로 출발 30분전 파워젤 3개를 한꺼번에 흡입한다.
0~5K - 00:29:30 / 00:29:30
함께 출발한 준혁형님과 간간히 대화를 하며 초반을 달린다. 사람이 너무너무 많다. 주로가 꽉 막혀서 앞으로 갈 수가 없다.
왠지 조바심이 나는 마음을 누른다. 무리해서 뚫고 나가지 않고 최대한 체력을 아끼며 자연스럽게 열린길을 따라 주자들을 조금씩 추월해 나간다.
어느 순간 준혁형님과 헤어지고 혼자 달린다. 준혁형님은 내 앞에 있을까 뒤에 있을까? 괜시리 외로워진다.
5키로 지점 조금 못 미쳐 신발끈이 풀어진다. 신발끈을 고쳐매는 30초가 너무나 아깝다. ㅜㅜ
5~10K - 00:27:25 / 00:56:55
청계천로에 진입하니 주로가 더 좁아진다. 규모가 조금 작은 대회는 5키로쯤 지나면 주로가 활짝 열리던데 역시 사람이 많구나. 초반에 밀린 시간을 한번에 만회 할 수 없기 때문에 또 조바심이 난다.
이 때부터는 기회가 되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다른 주자들을 앞지른다. 가끔 앞이 너무 막혀 있으면 다른 주자들이 없는 인도로 올라가서 빠르게 추월을 한다.
이 구간에서 체력소모가 조금 있었던 듯.
10~15K - 00:27:19 / 01:24:13
누군가 옆에서 "김포철인클럽 화이팅!" 이라고 외치기에 돌아보니 김포마라톤 동호회 회원분께서 동호형님 안부를 묻는다.
"동호씨는 나왔나요? 왜 안보이죠?"
"A그룹이라서 먼저 출발했어요."
"아. 그래요? 언능 가봐야겠다." 이러면서 휘잉 사라지신다.
주로에서 개인적인 격려를 받으니 갑자기 신나고 힘이 솟는다.
15~20K - 00:27:18 / 01:51:31
보급계획에 의하면 15키로 지점 이후 매 5키로 마다 파워젤로 보급하며, 주로상의 보급은 물을 제외하고는 하지 않기로 했다.(주로에서의 초코파이 맛이 기가막힌데.. 좀 아깝기는 하다. ㅜㅜ)
마침 아침에 먹은 약간의 음식과 출발전에 보급한 세개의 파워젤이 거의 고갈되는 느낌이었다. 15키로 급수대가 보일때 쯤 첫 한발을 터뜨렸다. 레이스벨트는 가벼워지고 몸도 가벼워진다.
게다가 훈련할때의 경험에 의하면 보통 15~16키로 지점에서 한 번 벽이 오는데, 파워젤 덕인지 쉽게 뛰어넘는다
20~25K - 00:27:15 / 02:18:45
하프를 막 지난 지점, 누군가... 익숙한 뒷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힘차게 외친다.
"박대우 화이팅!"
"(다정하게)어~ 왔어?"
"형님 3시간 50분 페메 따라간다고 했잖아여. 페메어딨어여?"
"(다감하게)못따라 가겠어"
"빨리와요. 언능갑시다."
조금 가다보니.... 대우형님이 뒤에 없다. ㅜㅜ
23키로 지점... 갑자기 왼쪽 종아리가 찌릿하다. 보급계획상으로 20키로 급수대에서 근육경련약을 먹었어야 하지만 깜빡하고 그냥 지나친 후, 25키로 급수대에서 먹을 생각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부랴부랴 약을 한 알 꺼내, 물도 없이 꿀꺽 삼킨다.
25~30K - 00:28:12 / 02:46:56
아주 약한 언덕을 올라가는 도중에 또다시 왼쪽 종아리가 찌릿한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른다. "으악!" 또 찌릿한다. "으악!"
주변사람들이 쳐다본다.
내가 봐도 신기했을 것 같다. 비명을 지르며 뛰어가는 내 모습이....
왜 하필 쥐는 급수대와 급수대 한 가운데서 오는걸까.. 이번에도 한 알을 물도없이 꿀꺽 삼킨다.
30~35K - 00:29:21 / 03:16:17
30키로 지점을 지나면서 시간을 가늠해본다. 목표로 서브4간까지 1시간 13분이 남았고, 남은거리는 12키로...
"키로당 6분으로 달려도 4시간안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쥐(이놈의 쥐!)라는 변수가 있고, 훈련 경험상 30키로 이후에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졌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정말 운이 좋아야 서브4를 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달린다.
마지막 쥐잡이약을 이번에는 진통제와 함께, 이번에도 물없이 꿀꺽 삼킨다.
35~40K - 00:30:08 / 03:46:25
잠실대교가 보인다. 종아리는 계속 쥐가 오글거리고 있고, 이제는 허벅지에도 신호가 오기 시작한다. 주로 한 쪽을 보니 스프레이 자봉해주시는 여성분이 보인다.
"아~ 천사보다도 아름답고, 나이팅게일 보다 성스러운 그대여! 나의 고통을 그대의 손길로 덜어주지 않으시려오~"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냅다 앞으로 뛰어가 뒤돌아 서서,
"종아리!!"
"종아리!!"
"왼쪽!! 아랫쪽!"
이러고 비명을 질러대다가 다 뿌려주자마자 휑하니 다시 뛰어갔다.
이 자리를 빌어 나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연락만 닿는다면 감사의 표시로 맛있는 밥도 한끼 사 드릴 의향이 있다.
40~Finish - 00:12:27 / 03:46:25
이제 2.195K 남았다. 남은시간은 13분30초... 6분페이스로 뛰면 0.195Km 까지 포함해 몇초 밖에 여유가 없다.
희망고문인가? 아예 서브4가 안될 것 같으면 조금 천천히 뛰어도 될 텐데, 이건 뭐 포기하면 땅을치고 후회할 것 같고 힘을 좀 더 내자니 몸이 안따라 준다.
잠실운동장이 보인다. 1키로 남은지점..7분 남았다. 아~ 울고싶다.
운동장에 들어섰다. 4분 남았다. 남은 거리가 가늠이 안된다. 과연 할 수 있을까?
트랙에 들어섰다. 3분 남았다. 갑자기 수많은 생각이 쏟아진다.
"훈련할때 400미터 질주를 몇분에 했더라?"
"3분 40초였는데?"
"잉? 그럼 서브4 못하는거잖아?"
"아냐! 바보야 3분40초 걸린게 아니라, 3분40초 페이스였잖아!"
"앗! 앞에 피니시 지점!, 사진포즈!"
그렇게 어정쩡하게 피니시 사진포즈를 취하며 피니시지점을 통과후 시계를 보니....
"3시간 58분 56초"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예스!" 라고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음.. 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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